* 스포주의



나즈와 그 가족의 인생이 뒤바뀐 'The Night Of October 24, 2014'. 


오랜만에 만난 취향 직격 드라마 'The Night Of'. 

HBO답게 비교적 느릿한 전개와 묵직한 메시지, 현실 세계에 대한 냉철한 고찰을 보여준다. 

하지만 같은 HBO 드라마인 트루 디텍티브와 비교한다면 'The Night Of'는 전개가 빠른 편이고 

군더더기가 없으면서 메인 스토리에 더 충실하다고 볼수 있겠다. 

1회부터 살짝 운을 띄우긴 했지만, 이 드라마는 비슷한 소재의 다른 드라마와는 확실히 다르다. 

'The Night Of'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주제는, 운나쁘게 살인 사건에 휘말려서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과 

그 주변 인물들의 삶이 망가져가는 차가운 현실, 그리고 헛점 투성이인 사법 체계의 문제점이다. 



1. 사건의 진실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 

드라마를 보면서 제일 쇼킹했던건, 아무도 그날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점이었다. 

모든 증거가 주인공인 나즈를 지목하긴 했지만, 사건 수사를 담당한 박스 형사는 형사 특유의 직감으로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물중에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형사는 다른 용의자를 찾아보는 대신, 현장에 어울리지 않는 증거를 없애고 나즈를 범인으로 

확정하는 편리한 길을 택한뒤, 계속 범행 사실을 자백할것을 요구한다. 

심지어 나즈의 변호를 자청하고 나선 스톤 변호사마저도 사건의 진실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스톤의 주된 관심사는 재판으로 가기전에 어떻게든 검찰과 형량 거래를 해서 감형을 하는것뿐. 


911이후 미국에서 가장 미움받는 소수 인종인 무슬림계 청년이 상류층 백인 여자를 끔찍하게 살해했다는 

뉴스는 단박에 세간의 이목을 끌게 되고, 이 사건에 편승해서 자기 회사의 지명도를 높이려는 대형 로펌의 

파트너 크로우가 나즈의 가족에게 무료 법률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나선다. 

하지만 크로우의 속셈도 나즈의 무죄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거래를 통해 형량을 대폭 줄이는 것이었고 

이 계획은 나즈가 법정에서 범행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무산된다. 

분노한 크로우는 무료 법률 지원을 취소하고, 재판 경험이 전무한 햇병아리 변호사 찬드라 카푸르에게 

나즈의 변호를 떠넘겨 버린다. 


정말 황당했던 변호사와 검찰의 형량 거래 장면. 

1급 살인이 우발적인 2급 살인으로 둔갑하고, 형량은 순식간에 종신형에서 15년형으로 삭감된다. 


나즈 : 형량거래가 나한테 유리하다면, 그 사람들은 왜 이걸 원하는거죠? 

찬드라 : 재판은 비용이 많이 들거든요. 검찰은 재판을 피할 합리적인 방법이 있다면 그쪽을 택해요. 

이런건 항상 있는 일이예요. 


한번 이런 일에 말려들어서 범인으로 지목되면, 진범이건 아니건 그런건 상관없고 그냥 형량 거래를 해서 

결과가 나오는대로 감옥 살이를 해야한다는 어이없는 결론.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바꾼 나즈는 종신형을 받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재판을 선택한다. 



2. 경제, 사회적으로 몰락해가는 나즈의 가족 & 소수 인종 문제 

아들이 무단으로 택시를 끌고나갔다가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바람에, 나즈의 아버지가 동업자들과 공동으로 

운영하던 택시는 증거물로 뉴욕시에 압수당한다. 

이 사건으로 나즈의 아버지는 동업자들에게 배척당한뒤 저임금 일용직에 내몰리고, 나즈의 어머니도 일자리를 

잃은 상황에 아들의 변호사 수임료를 대느라고 저축한 돈도 대부분 날리면서, 안그래도 팍팍했던 가정 경제는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모범생이었던 나즈의 동생은 형이 살인범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싸움에 휘말리는데, 피해자인 동생만 

징계를 받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하고, 나즈의 살인사건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무슬림들이 폭행당하는 일이 

발생하자 나즈의 가족은 무슬림 사회에서도 외면당하게 된다. 



3. 감옥에서 범죄자로 거듭나는 나즈 

이 드라마는 '근묵자흑(近墨者黑)'이 뭔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고교시절 폭행 사건과 대학시절 각성제 판매 전적이 있긴하지만, 강력 범죄 전과도 없고 소심하고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나즈는 감옥에 들어간 뒤로 본격적인 범죄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다. 

수감되자마자 감옥의 실세인 프레디에게 보호해주겠다는 제의를 받지만, 이를 거부하던 나즈는 다른 

수감자들에게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하자 결국 프레디의 보호를 받아들이고, 감옥내의 특권 계층이 된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란 없는법. 

보호의 댓가로 나즈는 목숨을 걸고 마약을 감옥내로 밀반입하기도 하고, 프레디가 보복 살인을 하는걸 

돕기도 하면서 점점 폭력과 범죄와 마약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감옥밖에서는 누려보지 못했던 권력에 점점 맛을 들여가는 한편,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자기 신세를 

한탄하기도 하는 나즈는 그 괴리감을 이기지 못해 결국 마약 중독이 되어간다. 

(드라마 초반에 왜소한 대학생이었던 나즈가 감옥 생활을 견디기위해 몸을 키우면서 시리즈 후반에는 

덩치가 꽤 좋아지는데, 나즈역 리즈 아메드가 드라마 찍으면서 벌크업하느라 고생 좀 했을듯.)



4. 자기들의 잘못을 숨기기에 급급한 경찰과 검찰 

나즈의 수석 변호인인 찬드라와 차석을 맡은 스톤은 각자 피살자인 앤드리아를 죽일만한 동기가 있는 

인물들을 찾아 증인석에 세우고 합리적인 의심을 제기한다. 

하지만 진범을 밝힐만한 결정적인 증거는 찾을수 없고, 재판은 점점 나즈에게 불리하게 흘러간다. 


잔혹한 살인사건 현장과 괴리감이 있던 천식용 흡입기를 경찰 증거물에서 빼내 나즈에게 넘겨주면서 

나즈의 결백을 입증할만한 근거를 제거했던 박스 형사는, 재판에서 찬드라에게 이 점을 지적당한 다음 

처음부터 자신이 미심쩍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재수사한다. 


그 결과 박스 형사가 찍은 진범은 바로 앤드리아의 자산 관리인이자 전 남친.  

도박빚때문에 앤드리아의 계좌에서 무단으로 거액을 인출했는데 그 사실을 덮으려던게 살인 동기. 


이미 형사직에서 은퇴하고 사건 수사와 범인을 체포할 권한이 없는 박스는 이 증거물을 검사에게 제시한다. 

하지만 검사는 나즈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더 확실하다면서 이 증거를 무시해버린다. 

경찰이고 검사고 사건의 진상 파악이나 정의 실현에는 개뿔도 관심이 없는 복장터지는 현실. 

 


5. 암울한 결말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채 처음으로 맡은 재판을 힘겹게 끌고가던 찬드라는 순간적인 감정때문에 저지른 

실수로 장래가 촉망되던 변호사로서의 커리어가 끝장나고 


재판 무효를 노리고 찬드라의 잘못을 재판부에 고발했다가 생각지도 못한 최종 변론을 맡게된 스톤은 

스트레스때문에 그동안 진정됐던 피부병이 재발해서 응급실 신세를 지게된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을 겪은 스톤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인생 최고의 변론을 펼치게 되고, 그 결과 

배심원들은 반복된 회의에도 불구하고 팽팽한 의견 대립으로 결국 평결을 포기한다. 


이미 진범의 존재를 인지한 검사가 새로운 재판을 포기하면서, 나즈는 감옥에서 풀려나게 된다. 

하지만 무죄가 확정되서 풀려난게 아니기 때문에, 계속 살인범으로 의심받으면서 살아가야 되는것이  

바로 나즈가 직면한 현실. 


팔려고 내놓은 나즈의 집에는 무슬림에 대한 사회적 증오를 보여주는 나치 표식이 그려져있고 


나즈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나즈의 결백을 믿지 못하고, 그 사실을 아는 

나즈도 가족에게 실망하면서 가족간의 신뢰와 유대 관계도 박살난다. 


나즈의 재판을 포기한 검사는 경비원으로 재취업한 박스에게 비밀리에 진범인 자산 관리인을 검거해달라는 

요청을 한다. 

하지만 이 사실은 언론에 공개되지 않고 암암리에 진행되면서 나즈의 결백은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일생일대의 최종 변론으로 나즈를 감옥에서 빼내긴 했지만, 재발한 피부병에 시달리는 스톤은 여전히 

재판정에 서지못하는 형량 거래전문 2류 변호사일 뿐이다. 

"남들이 널 어떻게 보든 말든 X까고 그냥 네 인생을 살아가면 되는거야."


감옥에서 풀려났지만, 동류인 무슬림들에게도 의심의 눈길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신세가 된 나즈. 


자유를 얻긴 했지만, 몰락한 집안과 망가진 가족관계, 살인범으로 의심받는 암울한 인생을 마주하게 된 

나즈는 현실 도피를 위해 감옥에서 배운 마약에 빠져든다. 


"진심으로 널 아끼는 사람이 있는 이곳이 바깥 세상보다 더 낫지 않아?" 

감옥에서 힘이 지배하는 폭력의 세계에 눈뜬 나즈는 이미 예전의 인생으로 돌아갈수 없고, 결국 범죄의 

길로 접어들어서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지 않을까하는 여운을 남기며 드라마는 종료된다. 

진범은 잡혔고, 무고한 주인공은 감옥에서 풀려났지만 결과는 절대 해피엔딩이 아니었고, 더 암울하다. 



번외편 : 이 드라마의 유일한 승리자 

결국 입양되는데 성공한 떼껄룩. 

(고양이 인기에 은근슬쩍 편승하지 말란말야, H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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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클레멘자 2016.11.15 23:3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존 터투로 너무 좋아하는 배우인데 정말 딱 어울리는 연기를 보여줘서 너무 좋았습니다.
    여러모로 HBO다운 드라마였어요.
    그나저나 드라마가 기승전 고양이ㅋㅋㅋㅋㅋ고양이 너무 귀여웠습니다.

  2. 그리고 2016.11.23 14:0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캬~ 같은 드라마를 봤는데 이런 명품 해설이 흐...잘 보고 갑니다.

  3. 김개 2017.09.30 11:1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정말 맛깔나게 정리잘하셨네요!!! 명품해설 감사합니다 배우들 연기 다 좋앗는데 존 터투로가 최고였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