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주의



드라마를 보면서 의식의 흐름대로 써본 '베터 콜 사울'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에 관한 이야기. 


1. 맥길 형제 

시즌2 5회는 두 형제의 과거 이야기로 시작된다. 

지미가 HHM의 우편실에서 일을 시작할 무렵, 척은 결혼한지 얼마안된 와이프 레베카에게 동생을 소개시켜주기 

위해 지미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는데, 어색한 식사 분위기를 깨기위해 지미가 변호사를 조롱하는 농담을 시작하고 

레베카가 이 농담에 호응하면서 분위기가 미묘해진다. 


살다보면 가끔 이럴때 있지 않은가? 눈치없는 누군가가 한명을 깔아뭉개면서 분위기를 띄우려고 하다가, 그 상대가 

화를 내면 '농담인데 웬 과민 반응? 쿨하지 못하게. 낄낄' 이런식으로 대응하면서 사람 두번 죽이는 그런 상황. 

여기서 더 심각한건 척은 결혼한지 얼마 안되서 자기도 아직은 어려운 와이프 앞에서 화를 낼수도 없고, 자기가 

속한 직업군을 가차없이 씹어대는 지미의 광대쇼를 묵묵히 참고만 있어야 한다는것. 

(이런 장면은 리듬이 절대적으로 중요한데, 밥 오던커크의 대사 리듬은 정말 완벽 그 자체였다. 역시 오랜 세월 

스탠딩 코미디 커리어를 쌓아온 사람이라 내공이 장난아님.)



고상하고 수준높은 음악가인 레베카가 지미를 못마땅하게 생각할까봐 지미를 쫓아내고 싶으면 귀를 만지라는 사전 

약속까지 해놨는데, 의외로 레베카는 지미의 농담에 자지러지느라 척이 계속 귀를 만지작거리는데도 전혀 눈치를 

못채고 오히려 남편의 직업을 희화화하는 농담에 동참하기까지 한다. 

지미가 떠난뒤에 척도 자조적인 농담을 시도해보지만, 레베카의 반응은 시큰둥함. 

이 장면으로 알수 있는건, 지미는 전혀 악의없이 저지른 우발적인 일로도 타인에게 감정의 앙금을 쌓게 하는데 

특출한 재주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 시기의 척은 '전자파 알레르기'가 전혀 없는데, 그래서 이 증상이 레베카와의 결별 혹은 사별을 계기로 생긴게 

아닌가 하는 궁예질을 해볼 수 있겠다. 



'전자파 알레르기'때문에 새벽에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하던 척은 킴에게 지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주면서 

더 이상의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지미를 멀리하라는 뜻을 완곡하게 전달한다. 

척이 대학에 다니느라 집을 떠나있을때 지미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동네 구멍가게에서 일을 했는데, 몇년후 

가게는 파산 위기에 처했다. 척이 원인 조사를 하다가 만4천 달러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몇년간 지미가 

그 돈을 빼돌렸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람좋은 부친은 이 얘기를 믿지 않았다. 

가게를 처분한뒤 맥길 형제의 아버지는 6개월후에 세상을 떠났는데, 장례식에서 가장 서럽게 울었던건 다름아닌 

지미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 대한 단서가 207의 오프닝에 나오는데...

맥길 형제의 아버지는 호인을 넘어 온동네의 호구가 된 사람인데, 어릴때부터 상황 판단이 빨랐던 지미는 

사기꾼들에게 속아서 순순히 돈을 내주는 아버지를 말리려고 하지만 호구력이 충만한 지미의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여기서 지미 아버지에게 구라치던 사기꾼의 말이 지미에게 큰 영향을 준것 같은데, 

"세상은 잡아먹는 자와 잡아먹히는 자로 구성되어있지. 네가 어느쪽이 될건지 생각해둬야 할거다."

이 얘기를 들은 지미는 사기꾼에게 받은 담뱃값을 다시 꺼내서 자기 주머니에 넣는다. 

어차피 아버지의 수중에 들어가봤자 또다른 사기꾼에게 뺏길게 분명하니 자기가 챙긴것 같은데, 파산의 원인이 

지미가 본격적으로 돈을 빼돌렸기 때문인지, 지미의 아버지가 계속 남들에게 퍼줬기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다. 


어쨌든 척이 생각하는것처럼 파산의 원인은 전적으로 지미의 잘못이 아니라, 경제감각없고 남을 의심할줄 모르고 

흥청망청 퍼준 아버지에게도 절반 이상의 책임이 있는데, 이 사실을 모르는 척은 이때부터 지미에 대한 불신을 

계속 키워왔다고 볼수 있겠다. 



2. 킴의 방황과 결단

205~206은 킴의 분량이 지미보다 더 많은데, 아마도 킴의 행보가 지미의 장래와 연관성이 있다보니 그 전초전이 

되는 과정을 설득력있게 묘사하는데 공을 들인것 같다. 

지미의 돌출 행동의 결과를 혼자 뒤집어쓰고 지하실로 유배된 킴은 스스로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온 사방에 

전화를 해서 대어 고객을 유치하려는 시도를 계속한다. 



그리고 고생끝에 드디어 거물 고객을 HHM으로 끌어오는데 성공하긴 했는데.....



하워드는 일을 따낸 장본인인 킴이 아니라 다른 변호사에게 그 일을 맡기려 하고 킴은 여전히 지하실 신세. 

척의 개입으로 킴은 간신히 지하실에서 벗어나 일을 맡게 되지만, 하워드의 태도는 냉랭하기 이를데 없어서 

킴을 멘붕시킨다. 



자기를 지하실로 유배당하게 만든 장본인인 지미를 멀리하긴 하지만, 아침마다 지미가 불러주는 노래를 몰래 

듣는것이 킴에게는 갑갑한 현실을 잠시 잊게 해주는 삶의 활력소. 



그리고 킴은 재판 직후, 샌드파이퍼 양로원의 변호를 맡고있는 로펌의 시니어 파트너 슈와이카트에게 일자리 

제안을 받게 된다. 우편실 직원으로 일하는동안 법대 등록금을 지원해준 HHM에 대한 의리때문에 킴은 일단 

이 제안을 거절할 생각을 하는데....



아무런 지원 사격도 없이 재판에 내보낸 것도 모자라서, 점심 시간도 없이 자기를 굴리려는 하워드의 태도에 

드디어 킴도 뚜껑이 열림. 

잘못한 것도 없이 지하실 유배당하고, 대형 계약을 따냈는데도 개무시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참았는데 

뭐 이쯤되면 킴이 무슨 성자도 아니고 빡칠만하다. 



그리고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킴의 일탈 시작. 

킴은 근무 시간에 회사를 빠져나와 술 한잔하다가 만난 사람에게 IT 창업을 준비중이라는 구라를 치고, 근무중인 

지미까지 불러내서 예전에 증권맨에게 했던 식으로 사기를 친다. 

투자금으로 받은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지 않고 기념품으로 보관하겠다고 했으니 진짜 사기를 친건 아니지만, 

확실히 지미의 영향으로 킴도 일탈의 짜릿함에 맛을 들이기 시작한듯. 



킴이 HHM을 그만두고 다른 로펌으로 이직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듣자, 지미는 짤리기위한 온갖 노력을 다한끝에 

결국 데이비스&메인에서 해고당하고 킴에게 달려와 로펌 동업을 제안한다. 



하지만 지미때문에 엄청난 좌천의 시련을 겪고 HHM에서의 입지가 불안해진 킴은 동업을 거절한다. 

이때 킴은 지미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데, 

'Are you gonna play it straight? or are you gonna be colorful?"

(규범을 지키면서 변호사 일을 할것인지 아니면 계속 튀는 행동을 할것인지)

단어 선택 한번 절묘하다. colorful만큼 지미 맥길을 묘사하는데 적절한 단어도 없지. 



회사에서 해고당하기 위해 지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요란하기 짝이없는 색깔의 옷을 입는것이었다. 


'사울 굿맨'의 대표적인 색깔은 노랑이라고 할수 있는데, 브배에서 사울의 광고판 배경도 노란색이고, 사무실 

배경도 노란색 계열에, 베터콜 사울에서 지미의 똥차도 노란색, 오프닝 화면도 노란색이 메인이다. 

베터콜 사울의 오프닝은 노란색을 위주로 배경이나 글자도 현란한 원색으로 구성됐는데, 상식과는 거리가 멀고 

언제나 예측불가인 지미 맥길의 본성을 총천연색의 원색으로 묘사한걸로 보인다. 



컬러의 의미를 뒤늦게 깨닫고나니, 사울 굿맨의 현재 모습을 왜 굳이 흑백으로 보여주는지도 이해가 간다. 

어떤 종류의 색깔도 나타나지 않는 현재 시점의 배경은, 쫓기는 처지라 철저하게 본성을 억누르고 튀는 행동은 

단 한가지도 해서는 안되는 사울의 암울한 상황을 의미한다. 

(쓰레기장에 조막만하게 새긴 '사울 굿맨'은 좋았던 시절에 대한 미련이라고 볼수도 있고, 자기 본성을 완전히 

죽이지는 않겠다는 최소한의 몸부림일수도 있겠다.) 



'S&C'에서 시니어 파트너들과의 면접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온 킴은 작별 인사를 하면서 슈와이카트를 하워드라고 

부르는 실수를 저지르고 당황한다. 



사소하다고 볼수도 있지만, 그 실수때문에 이직이 틀어질수도 있는 상황에 처한 킴은 '결국 그 회사도 또 다른 

HHM에 불과하다'라는 지미의 말을 되새기게 되고, 



지미가 주고간 '웩슬러&맥길' 명함을 꺼내서 절반으로 찢은뒤 한참을 바라본다. 



로펌에서 짤린뒤 다시 네일샵의 구석방으로 돌아간 지미를 찾아간 킴은, 지미의 창업 제안에 동의하긴 하지만 

'웩슬러&맥길'이 아니라 사무실만 공유하고 각자 개별적으로 활동한다는 조건을 내세운다. 



반으로 잘린 명함을 바라보며 심란한 지미. 

킴과 함께 일한다는 꿈이 실현되긴 했지만, 연대 책임을 지는 동업이 아니라 각자 독립적인 변호사로 활동하자는 

킴의 제안은 더 이상 지미가 사고치는데 휘말려 들어가 피해를 보지 않겠다는 의미가 된다. 

결국 그동안 있었던 일때문에 킴은 예전처럼 지미를 믿지 못한다는 뜻. 

207 마지막 장면 지미의 난감한 표정은 바로 이런 상황을 대변한다. 


베터 콜 사울은 흐름이 느릿하고 한 에피소드에 나오는 스토리가 적은 대신, 배우들의 연기와 장면 묘사 등으로 

등장 인물의 심리 묘사나 복선을 깔아놓는데, 브배 시절도 그렇고 이런게 빈스 길리건 드라마의 특징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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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ㄷ 2017.12.17 19:1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이런 의미가 있었군요ㅋㅋ 흑백 화면이라서 저는 과거인줄 알고 무슨 의미일까 생각했는데 볼수록 미래시점인거같더라구요
    지미가 척의 전처와 떠드는 장면에선 그저 척이 유머감각 좋고 누구에게나 호감을 사는 지미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장면인줄 알았는데.. 변호사 농담에 불쾌해했던거였네요ㅋㅋ 몰라봤어요 대체 하워드는 킴에게 왜저리 냉담한건지 이해가 안가요 ㅠ 베터콜사울 새 시즌 기다리던 차에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

    • Favicon of https://icecraft.tistory.com BlogIcon 고양이집사 DreamTime™ 2017.12.17 19:32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댓글 감사합니다. ^^
      베터콜 사울의 흑백화면은 브레이킹 배드 이후의 시점으로 월터의 마약거래에 연루되서 숨어지내는 사울 굿맨의 현재 이야기죠.
      처음엔 드라마의 주된 내용과 구분하기 위해서 흑백화면을 사용한줄 알았는데 드라마를 보다보니 색상이 주인공의 심리와 상황을 묘사하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2. 엄스 2018.03.12 02:2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킴웩슬러는 브배에서 나오지 않는건 그냥 단순히 헤어져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