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대로 써보는 와일드카드 후기.
개인적으로 올해 와일드카드는 초박빙일거라고 예상했다.
후반기에 버닝하면서 대 SK 상대전적을 9승 7패로 마감하긴 했지만, 선발진이 후달리는 엔씨는 전반기에
SK 홈런군단과 상성이 극악이었고, SK 선발 켈리, 박종훈에게 극도로 약했기 때문에 단기전에 만난다면
경기 후반까지 한두점을 간신히 뽑고 똥줄 승부를 할거라고 생각했음.
게다가 1~4위가 결정된 시즌 마지막 경기에 SK는 두산을 상대로 역전승을 하면서 기분좋은 마무리를 한 반면,
엔씨는 시즌 막판 몇 경기에 타선이 살아나서 짧은 연승은 했지만, 마지막 한화전에서 리드를 잡고있다가
맛간 불펜이 동점을 허용하는 바람에 불펜 다 털어붓고 12회까지 가서 무승부를 하는 막장 경기로 시즌을
마감해서 시즌 말미의 흐름이 좋지않았다.
게다가 1차전 선발이 맨쉽 vs 켈리?
선발 매치업만 봐도 제구안되는 맨쉽이 1회 40구를 넘기며 털리다가 3회 이전에 강판되고, 맛간 엔씨 타자들이
켈리한테 7회까지 간신히 1,2점 쥐어짜면서(무득도 가능) 끌려가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나.
하지만 결과는.......
초장에 켈리 털어서 내려보내고 3회에 거의 승부를 결정지음.
지난 3년동안의 엔씨의 가을야구 경험이 허사가 아니었다.
집중력의 차이라는데 그 집중력도 경험이 밑바탕이 되어야 나오는거지.
반대로 왕조 DNA가 거의 사라진 SK는 고참들을 제외하면 굳어있는게 보일 정도였다.
시즌내내 솔리드했던 켈리가 1회부터 대량 실점을 한것도 반드시 1차전을 이겨야하는 입장에서
지나친 긴장감이 원인이었던것 같고, 이해 안가는 4일 휴식후 등판도 무리였다.
와일드카드 1차전 승부의 최대 분수령은 3회말.
1회에 홈런 두방맞고 4실점을 하긴 했지만 2회는 정신차리고 무실점으로 막은 켈리를 3회에 다시
올린것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3회에 스크럭스, 이호준에게 연속으로 안타 볼넷을 허용한 다음에
박석민 타석에서는 교체를 했어야 했다.
결국 박석민한테 홈런성 단타(!)를 맞고 5실점을 하더니, 폭투로 3루 주자를 들여보내서 6실점,
이때 2루까지 간 박석민을 포일로 3루까지 보내고 투수 교체, 그리고 희플로 7실점을 하게 됨.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
3회말 2사 1,2루에 나온 박민우는 2스트 노볼로 절대 불리한 카운트에 몰리는데, 여기서 스트존에 비슷하게
들어오는건 커트해버리고 높은공 낮은공은 다 걸러내고, 끈질긴 타자들 상대하는데 지친 투수가 던진 한가운데
몰린 실투를 안타로 만들면서 8점째를 올린다.
엄청난 집중력으로 투수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엔씨 타자들.
결국 이런것도 다년간에 걸친 가을야구 경험에서 나오는 결과물이다.
* 와카에서 희망적이었던 점
(시즌경기의 한장면)
연속으로 장타성 타구를 날린 박석민의 타격폼이 한참 좋을때로 돌아온것처럼 보임.
확신을 못하겠는 이유는 박석민이 반짝하고 살아나서 희망고문을 하다가 장기간 삽질 모드에
돌입하는 모습을 시즌내내 반복했기 때문이다.
원래 롯데상대로 천적급인 박석민이 제대로 살아나주기만 한다면 준플레이오프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도움이 되겠지.
아무래도 이승엽 은퇴식 뒷풀이에 가서 냉면만 먹고온건 아닌것 같다.
올 시즌 최종 성적 12승 4패, ERA 3.67으로 겉보기에는 그럭저럭 준수한 성적을 올린듯 보이는
맨쉽의 진면목을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는 포스트 시즌 공중파 경기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점.
내년에 다시 볼일이 없는건 물론이고, 잘 던지는 투수를 왜 버렸냐는 소리도 안 나올테니 개이득.
두달간의 부상 이탈로 1군은 물론 2군 투수진까지 초토화시키면서 팀에 빅엿을 선사하더니, 복귀후에는
제대로 망가져서 제구도 안되고 이닝도 못먹고....아무리 두달을 빠졌어도 선발이 시즌 112.2이닝밖에
못 먹었으니 이게 말이 되나.
이게 얼마나 기막힌 기록이냐면 올해 첫 선발 풀타임을 뛴 장현식이 134.1이닝인데 여기서 불펜으로 뛴
19이닝을 빼도 115.1이닝이고, 작년에 똑같이 두달간 부상으로 빠졌던 해커도 140.2이닝이었다.
투구수 50구에 근접하면 급격히 제구가 안되고 구위도 떨어져서 긴 이닝을 버티질 못하는 바람에
복귀 후에도 불펜 과부하에 톡톡히 한 몫을 한 올해의 역적이 바로 맨쉽이다.
뭐 그렇다고 50구 이전에는 솔리드한가? 절대 아님.
솔직히 부상전에도 잘 던지다가 제구가 흔들리면서 한 이닝에 투구수가 급증하는 바람에 안정적으로
긴 이닝을 소화한 적이 거의 없다.
선발 당일 오후까지 관광하러 다니다가 그날 경기 망치고 조기 강판된건 지금 생각해도 피꺼솟이지만
어차피 내년부터 안볼테니 그 얘기는 생략한다...(ㅅㅂ)
어쨌든 무늬만 1선발인 맨쉽으로 와카를 잡으면서, 준플에서는 진짜 1선발인 해커가 중요한 1차전 선발로
나올수 있게 됐으니 와카 1차전 맨쉽 선발은 이래저래 신의 한수가 되어버렸다.
나성범, 박민우를 비롯한 젊은 선수들이 3년간 가을 야구 경험을 쌓고 4년차에 접어드니 이제 슬슬 포시 베테랑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는 점. 올해 신인들을 빼면 최소 포시 2년이상 경험자들이다.
14년 팀 창단 첫번째 포스트 시즌 경기에서 어이없는 에러를 했던 박민우가, 이번엔 불리한 카운트에서 끈질기게
버티다가 결국 타점을 올리는 장면은 그야말로 격세지감이었다.
작년에 4연패로 광탈하긴 했지만 한국 시리즈까지 밟아봤는데,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치르는 와일드카드 정도는
시즌 경기나 마찬가지로 느껴졌을지도 모르지만....준플레이오프에서도 이런 모습이 나왔으면 좋겠다.
5점 리드한 9회초에 뜬공 수비로 아웃카운트 두개를 잡고 경기를 마무리한 박민우.
2사잡고 동료들한테 아웃카운트 표시해주고, 경기가 끝나고도 담담한 모습에서 경험에서 오는 여유가 느껴졌다.
(그나저나 캐백수 일 제대로 안하나....준플레오프라니 자막이 저게 뭐냐)
어차피 시즌 성적을 4위로 마감해서 우승은 기대안한다만, 경험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올라갈수 있는데까지는
올라가보고 시즌을 끝냈으면 좋겠다. 최소한 플레이오프까지는 밟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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